한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실력은 비교대상 국가 중 늘 2~4위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등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시험 위주로 공부하여 나온 성적은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와 삶의 판단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낙후된 교육환경은 왜 지속되는가? 이것의 문제요인은 주로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교육관료들: 초중등 학교의 현실에 너무 어둡고 교육투자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첫째, 일단 교육당국자들이 과다한 학급당 학생수, GNP 대비 낮은 교육투자가 어떤 양상으로 현장교육을 척박하게 만드는지 절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가 15~20명을 넘으면 수업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학생들의 자제력과 교사의 통제력은 상실되기 시작한다. 수업을 질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10여년 전에 프랑스 고교생 10만여 명이 학급당 학생수 25명이 많다고 거리시위를 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교사들 3만여 명이 가세하여 다시 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연이어 2년째 전국 단위 대규모 시위에 대해 정부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당국은 학생과 교사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하고 투자를 약속했다. 그래서 현재 평균 20명 선으로 줄었다.
한국은 대도시 지역의 경우 학급당 36~45명으로 거의 방치상태다. 정부와 적지 않은 교육관계자들이 교사 개인이 우수하고 실력이 있으면 ‘교실혁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신화다.
이른바 ‘교실혁명’은 학생수가 적을 때, 교사의 수업시수가 주당 14시간 정도, 맡은 행정업무가 거의 없을 때, 승진하면 교직에서 성공한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질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투자가 이뤄져 소규모 학급을 만들면 ‘배우고 싶은 욕망과 가르치고 싶은 열정’이 저절로 살아나게 된다.
요즘 각급 학교에 배치되어 있는 원어민 교사들의 한곁같은 반응은 과밀학급이라서 가장 기초적인 회화 이외에 더 이상 세부적인 생활영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어민을 통한 회화교육은 투자된 만큼 결실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교사들은 행정서류를 거의 만지지 않는다. 미국의 한 소규모 학교에서는 행정보조원이 교사정원보다 많으며, 러시아의 톨스토이 학교에서는 행정담담, 학술-교수담담, 행사담당, 촬영 및 기록담당 교감 4명이 학생과 교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조건이 그만큼 갖춰져 있는 것이다. 한국의 교사들은 결재서류를 들고 이러저리 분주히 다니는 풍경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20여년 지내고 나면 교사들은 가르치지 않고 학교를 관리하는 직책인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교사들의 승진욕망은 바로 열악한 교육환경을 방치하는 정부가 조장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교육환경 개선은 장기간에 걸쳐 거액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장관의 임기가 거의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할 정도로 바뀌어야 하는 등, 정권의 변동에 관계없이 교육투자와 제도적 개선이 일관성있게 이어지는 국정철학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치인들이 단기 실적을 내고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교사들이 승진점수를 따느라고 수업에 진정으로 직결되는 교과연구와 독서를 소홀히 하는 오랜 폐단을 시정하고자 점수경쟁을 하지 않고도 교장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내놓았다. 교육행정 전공 3년제 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3-40대에도 교장이 되도록 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는 일단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평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도록 교육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 정책 역시 미봉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교사들 1 : 교육모순에 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각자 흩어져 있다
정부의 무능과 단기 실적위주의 정책남발의 관행을 막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단결된 저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교사들은 각기 흩어져 있다. 최근 학원가에서 선거자금을 지원받아 대가성 여부가 법원판단에 맡겨진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에 대해 퇴진서명이 진행중이다. 서울시 교육감의 행보가 전국 교육감들의 교육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이 사안은 서울시민과 교사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여기서도 교사들은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수성향의 교사들이 개혁성향의 교사들에 불필요하게 거리감을 두고 있다. 이는 서양의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창조는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너무 생소하기 때문이다. 즉 안정에 집착하면서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지난 11월경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초등학교를 정년퇴임한 김용택씨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집단 중에 교사들이 있으며, 교원승진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교직사회는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교사들은 교원단체 소속 여부를 가리며 교육정책의 모순에 대해 토론하며 저항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이 분열의 기제는 바로 정서적, 도덕적 평가이다. 개혁성향의 교사들에 대해 거칠고 예의없다는 편견으로 처리하며 일반화시킨다. ‘교사는 점잖고 착해야 한다’는 것을 신조로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같지 않다는 ‘동일성’의 논리에 집착하며 거리를 둔 채 교사들 각자는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 분열은 곧 비민주적이고 비전문적인 교육행정가의 출현의 온상이 된다. 마치 시민의식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의 국민이 독재자가 출현하는 터전을 만들어내듯이.
캐나다의 경우에도 교사들이 교직에 들어오면 이내 대다수가 교원노조원이 된다. 그만큼 노동자로서 계약적인 사고에 충실하다. 그래서 학생을 위해 수업준비에 전념하고, 노동조건 즉 교육환경이 열악하면 국가와 맺은 계약의 불성실한 이행을 문제삼으면서 국가에 대해 투자와 개선을 요구한다. 여기서 교사를 ‘노동자’로 규정하는 방식이 학생에 대한 교육력을 제고하도록 역동적으로 촉구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둘째, 교사들이 담임교사, 젊은 교사, 교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는 교사를 제외하고 상당수의 교사들이 수업 빈 시간에 끊임없이 독서하고 교과탐구에 전념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이 수업 빈 시간에 주로 인터넷 쇼핑몰 둘러보기, 유학간 자녀나 결혼을 앞둔 자녀와의 전화, 동료와의 상시적인 사담(私談)을 나누고 있다. 교사들이 이러한 사적인 것과 수업준비하고 독서하는 공적인 것을 혼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교육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요인 이외에 다른 원인은 무엇인가?
교사들 2 : 교사들은 가르치고 책읽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교사들의 투철한 교육적 신념이 실종된 사회적 요인은 가족중심주의, 결혼중심주의, 연장자 중심 등의 관습으로 추정된다. 학교에서 생활이 삶의 주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주된 초점이 가족에 모아져 있다. 그래서 학교전화로 가족에게 전화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시간에 교사의 책읽기와 학생상담은 실종된다.
미국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사적으로 학교전화를 이용하면 동전까지 계산하여 지불하기도 한다. 열정을 갖고 교직생애를 다할 때까지 수업자료 편집, 독서 등을 통해 실력을 연마하는 모습이 사라진 상황이 지속되면 교원평가는 더욱 힘을 얻을 수 밖에 없다.
내 자녀만을 해외로 내보내면 되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이 발전해야 해외의 교포들도 그 나라에서 정치, 법적 권리를 보장받게 되며 이는 우리의 교육 경쟁력이 강화되어 장기적으로 국력이 신장될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교사들이 먼저 변해야 하고 또 단결해야 한다. 이것이 교육개혁의 시발점이다. 개인이든 단체를 통해서든, 집회든 서명이든 뭉치며 정부에 할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의 교사들이 잃어버린 표현의 권리를 되찾는 길이다. 아울러 교사들 내부에서도 건강한 토론을 통해 서로를 비판에 겸허히 드러내며 스스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에 놀라 도덕적으로 응수하지 말고 비판을 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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