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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스크랩

천국

by GEOSTAR 2012. 7. 22.

그저 나의 천국

그 동안 몇 달간 다른 곳에 머물렀습니다.
그 곳은 동남아시아 중앙에 있는 나라의 북쪽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은 정글과 산에 숨겨진 도시였습니다.
그 마을로 가려면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몇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길은 어찌나 커브와 언덕과 내리막길이 많던지 승객들을 멀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그 마을은 특별히 볼 것도 갈 곳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 흔한 사원조차 없었으니깐요.
그렇기에 당연히 관광객도 많지 않았고 그들을 위한 시설, 예를 들어 괜찮은 숙소라던가
깔끔한 식당, 큰 도시를 연결하는 운송 수단도 자주 없는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건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사용하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곳이 아주 외진 오지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다른 마을들 보다 조금 고립되고 숨겨진 마을일 뿐이었습니다.

그 곳에 머무는 동안 가장 불편했던 건 인터넷이었습니다.
글을 써서 한국으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고 외부의 소식을 전해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찾은 인터넷 카페는 어찌나 느리던지 파일을 보내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간은
고행과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참을성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텅 빈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곳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때 묻지 않은 몇 안되는 곳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특히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그들은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미소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밴 미소처럼 보였습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건 웃음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과 여행객들이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화였습니다.

15분이면 다 돌아 볼 수 있는 시장 거리와 작은 강 주변으로 이어진 방갈로 촌,
한낮의 태양을 피해 그늘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친절했고 평화로웠습니다.
모두가 어울려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대나무로 만든 방갈로를 빌려 두 달 반을 머물렀습니다.
물론 상상하던 운치 있는 방갈로가 아닌 벌레들이 들끓는 곳이었고 어떤 때는
몇 시간씩 전기가 나가기도 했지만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고 그저 모든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죠. 아무리 불평을 해봤자 들어줄 사람이 없었으니깐요.
적응하기 전까지 불편하고 당장 큰 도시로 옮겨가고 싶었지만 막상 적응하고 나면
모든 것이 쉬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운치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곳에서의 하루는 모든 것이 간단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폭포가 있는 곳에 가서
수영을 하고 작은 카페에 가서 아주 단 커피를 한잔 주문해서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뭔가 끄적이고
그러다 저녁을 챙겨 먹고 해가 져 서늘해지면 시장을 돌아보고 그 곳에 나처럼 장기간 머물고 있는
여행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방갈로로 돌아가 초와 모기향을 켜고 나무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천체를 돌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거나 작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습니다.

지루함이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지루함 같은 평화가 그 곳의 전부였으니까요.
이런 고요한 생활을 하다 다시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넘쳐 나는 사람들, 큰 건물들, 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
사실 모든 것이 그 마을과 비교가 되고 편하긴 했지만 언제나 마음 속으로는
제가 머물던 그 마을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그곳은 이미 심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나와는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아마 그건 제가 도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아주 잠시 스치듯 머물렀던 그 마을을 그리워 하긴 하지만
막상 돌아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 곳은 사람을 오래 오래 머물게 하는 마력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돌아가는 대신 '언젠가 다시'라는 막연한 단어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가능하면 그 곳에 다시 돌아갈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 곳은 제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나만의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곳에 어떻게 가는지 압니다.
저는 그 곳의 이름을 압니다.
저는 그 곳에 여전히 제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 곳이 어디인지 말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이건 그 곳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과의 무언의 약속입니다.
이기적이지만 우리는 그 곳을 우리 만의 천국으로 남겨둘 예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절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곳이 어디인지 제게 묻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마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고 그 작은 마을을 생각하며 이 곳에서 살아가려 합니다.
누구에게나 결국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천국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아둥바둥 살면서 늘 그곳을 꿈꾸며
이곳의 피곤함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곳은 나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래 당신들의 천국은 어디입니까?




* 생선(김동영)은 MBC FM4U 라디오에서 몇몇 프로그램의 음악작가로 활동했고 델리스파이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비롯해 이한철, 불독맨션, 재주소년의 노랫말을 공동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나만 위로 할 것' 두 권의 여행 에세이를 출판했다.

 

http://music.cyworld.com/special/travel/travel_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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